타임라인으로 보는 노조와 기득권의 갈라치기 역사 :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주말부터 이어진 삼성전자 노조 파업과 관련한 글들에 피로를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누군가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아주 장문의(매우 깁니다) 두서 없는 글을 적어봅니다. 공감 못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네트워크를 통해 본 대한민국은 현실은 이렇습니다.
한국의 노조와 기득권 관계를 한 시점만 잘라서 보면 본질이 안 보입니다. "왜 노조 지지율이 낮은가"는 2026년의 질문이 아니라 1945년부터 누적된 80년의 결과를 묻는 질문입니다. "왜 같은 노동자끼리 싸우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은 그 80년을 타임라인으로 정리하고, 거기서 보이는 갈라치기 메커니즘과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짚어봅니다.
먼저 한 가지 짚고 시작합니다. 이 글은 "국민이 무지하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사람이 갈라치기를 받아들이는 데는 합리적 이유가 있고, 그 합리성을 이해하는 게 출발점입니다.
1.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개념 하나만 정리합니다.
법적 정당성과 사회적 정당성은 다릅니다. 법적 정당성은 "법 위반이 없는가"의 문제이고 법원이 판단합니다. 사회적 정당성은 "받아들일 만한가"의 문제이고 시민이 판단합니다. 절차가 합법이어도 결과가 이상하면 사회는 의심합니다. 그 "이상하다"가 사회적 정당성의 영역입니다.
사회적 정당성은 네 가지 차원으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절차가 옳았는가(절차적), 결과가 받아들일 만한가(결과적), 이익과 손해의 분배가 공정한가(분배적), 사회가 인정하는가(인정). 한국 사회에서 노조와 자본의 정당성을 이 네 차원에 적용하면 흥미로운 비대칭이 나옵니다. 분배적으로 정당한 쪽이 인정받지 못하고, 분배적으로 의문스러운 쪽이 인정받습니다.
이 비대칭이 우연이 아니라는 게 이 글의 주장입니다. 80년의 누적 결과입니다.
2. 1945~1960년대 : 적산 불하: 자본의 출발선
해방 당시 한국 내 일본인 재산이 산업자본의 약 98%를 차지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공장, 광산, 부동산이 갑자기 주인 없는 자산이 된 상황입니다.
이 자산이 어떻게 처리됐는가가 한국 자본의 출발선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 다수는 국유화를 주장했습니다. 식민지 침탈로 형성된 자산을 특정 개인 소유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친미·친이승만 세력에게 헐값으로 불하했습니다.
대표 사례 몇 가지가 있습니다. SK그룹은 일본 기업 선경직물의 한국인 관리인이었던 최종건이 1952년에 불하받아 출발했습니다. 선경직물은 일제 시기 전쟁 군복 안감을 제조하던 회사입니다. 한화그룹의 출발도 조선화약공판이라는 조선 유일의 화약 공장을 관리하던 인물이 창업주가 되는 구조였습니다. 삼성, 개풍, 대한산업, 삼호, 태창 등 1세대 재벌 다수가 적산 불하와 미국 원조라는 두 가지 외부 자원으로 종잣돈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의 핵심은 자본 형성 자체가 시장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가 권력이 자산을 특정 세력에게 배분한 결과입니다. 누군가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더 효율적으로 경영해서 자본을 축적한 게 아닙니다. 일제가 두고 간 자산을 누가 받느냐의 정치적 결정이었습니다.
이게 한국 자본의 0년차입니다. 출발선이 시장이 아니라 정치였습니다.
3. 1961~1979년 : 박정희 정경유착의 제도화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 이후 같은 해에 한국경제인협회가 결성됐습니다. 초대 회장은 삼성 이병철이었습니다. 현재 전경련의 전신입니다.
이 시기에 정경유착이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정부가 산업·자금·외환을 통제하면서 재벌에게 특혜를 분배하고, 재벌은 정치자금과 뇌물로 보답하며, 정부는 다시 사업권·대출·규제완화를 제공하는 순환 구조입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그 제도적 틀이었습니다.
결정적 분기점은 1972년 8월 3일 사채 동결 조치입니다. 이 조치로 기업의 사채 부담이 사실상 면제됐고, 재벌 체제가 완성됐습니다. 시민이 받아들일 만한 정상적 시장 메커니즘이 아니라 정치 권력의 결정으로 부채가 면제된 사건입니다.
이 시기에 자본의 정당성 서사가 만들어졌습니다. "재벌이 산업을 일으켜 국가를 발전시킨다", "보릿고개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재벌은 애국이고 발전의 주역이다"라는 서사입니다. 적산 불하의 출처는 가려지고, 정경유착의 구조는 "국가 발전을 위한 협력"으로 포장됐습니다.
이 서사가 한국 사회에 깊게 박혔습니다. 2026년 현재까지도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인식의 뿌리가 이 시기입니다.
반면 같은 시기 노동자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970년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의 현실은 13~17세 여공이 다수였고, 하루 14시간 노동, 햇볕 없는 다락방 작업, 폐결핵 만연이었습니다. 그해 11월 13일 전태일이 분신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가 그가 남긴 말이었습니다.
당시 노조의 사회적 정당성은 시작 지점도 아니었습니다. 노조는 빨갱이로 분류됐고, 노동자는 산업의 부품이었으며, 노동권은 법전에만 존재하는 추상적 권리였습니다. 전태일 분신이 충격이었던 이유는 노동자의 인간성을 사회가 처음으로 인식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노동자가 "사람"이라는 인식 자체가 약했습니다.
자본의 정당성과 노동의 정당성이 이 시기에 결정적으로 갈라졌습니다. 자본은 국가 발전의 주역으로 격상됐고, 노동은 사회 위협으로 분류됐습니다.
4. 1987년 : 노동의 정당성 첫 도약
1987년 6월 항쟁이 정치 민주화의 분기점이었다는 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덜 알려진 사실은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에서 약 3,000건의 노동 쟁의가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한국 역사상 6.25 이래 최대 규모의 노동자 대투쟁이었습니다.
시작은 7월 5일 현대엔진 노조 결성이었습니다. 현대그룹에서 시작된 노조 결성과 임금 인상 요구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8시간 노동, 노조 결성권, 임금 인상이 핵심 요구였습니다. 기존의 어용노조 외에 민주노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노조의 정당성이 만들어진 논리는 정치 민주화와 결합된 형태였습니다. 민주화는 정치적 자유를 의미하고, 정치적 자유는 결사의 자유를 포함하며, 결사의 자유는 노조 결성권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입니다. 노동권이 민주주의의 일부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정치 민주화는 됐지만 경제 민주화는 안 됐습니다. 재벌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고, 박정희 시대에 형성된 정경유착의 자산은 1987년에 거의 손대지지 않았습니다. 정치 권력만 민주화됐지 경제 권력은 그대로였습니다.
이게 한국 정당성 비대칭의 두 번째 결정 지점입니다.
이때 두 가지 출발선이 만들어졌습니다. 자본은 40년간 누적된 정당성 자산을 그대로 들고 1987년 이후로 진입했습니다. 노동은 정당성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같은 1987년이지만 두 측의 출발선은 40년 차이가 났습니다.
5. 1997년 IMF : 결정적 분기점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 노사관계의 결정적 분기점입니다.
위기의 도화선은 한보그룹 부도였습니다. 정태수 총회장의 검은 돈 로비가 드러났고, 재벌-금융-관료 유착의 실체가 노출됐습니다. 그러나 위기 처리 과정에서 누가 부담을 졌는가를 보면 비대칭이 다시 한 번 작동합니다.
대우그룹을 포함한 일부 재벌은 해체됐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재벌은 위기 이전보다 강해졌습니다. 정리해고제가 합법화됐고(1998년 노사정 합의), 파견근로가 확대됐으며, 비정규직이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10년이 지난 2007년경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정규직은 노조의 보호를 받았고,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 자체가 어려운 구조에 놓였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처우가 달라졌습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굳어졌습니다.
여기서 갈라치기의 핵심 도구가 만들어졌습니다.
대중 인식에 "정규직 노조는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이 자리잡았습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않으면서 자기 임금만 챙긴다", "귀족 노조"라는 표현이 일상화됐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었습니다. 일부 정규직 노조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자체는 IMF 이후 자본의 선택이었습니다. 노조가 만들 수 없었던 구조입니다. 그런데 그 구조의 책임이 노조에게 전가됐습니다. 갈라치기의 전형적 패턴, 즉 구조적 문제의 책임이 약한 쪽에 전가되는 패턴이 정확히 작동했습니다.
이 시기에 노조 조직률이 결정적으로 떨어집니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약 14%로 OECD 하위권입니다. 시민 다수가 비조합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비조합원의 노조 인식은 매체에 의해 형성됩니다.
6. 2000년대~2026년 : 재벌의 글로벌화와 매체 환경
2000년대 이후 한국 재벌은 글로벌 기업이 됐습니다. 삼성, 현대차, SK, LG가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2007년 한미 FTA 체결로 외국 자본의 영향이 증가했습니다. 재벌 3세 시대가 시작됐고, 경제력 집중은 심화됐습니다.
이 시기 재벌 정당성의 흥미로운 특징은 도전받지만 결국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으로 이재용이 1차 구속됐지만 사면 후 복귀했고, 2025년 7월 17일 19개 혐의 전부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사법 절차가 작동했지만 최종 결과는 면죄였습니다.
그 사이에 매체 환경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종편이 등장했고, SNS와 유튜브가 일상이 됐으며, 24시간 뉴스 사이클이 자리잡았습니다. 광고 시장은 디지털로 이전됐고, 댓글 여론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이 환경에서 갈라치기는 더 정교해졌습니다. 자본 측은 매체의 광고 의존도를 활용해 보수적 프레임을 유포하고, 종편을 통해 노조 비판 콘텐츠를 확산시키며, 1인 미디어와 댓글창에서 노조 부정 여론을 누적시킬 수 있습니다. 노조 측은 자체 매체 영향력이 약하고, 시민 다수가 비조합원이기 때문에 매체에 형성된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악순환이 작동합니다. 매체 환경이 노조 부정 프레임을 누적시키고, 시민 인식이 그에 따라 형성되며, 노조의 사회적 정당성이 약화되고, 협상력이 약화되며, 실질 결과가 악화되고, "역시 노조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강화되며, 노조 가입률이 더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이재용 합병 사례를 보면 매체 프레이밍의 효과가 명확합니다. 국민연금이 6,815억 원의 손해를 봤고 외국 투자자 ISDS 배상이 2,100억 원에 달했으며, 16억 원의 증여세 처리 의혹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체 헤드라인은 "사법 리스크 해소", "뉴삼성", "글로벌 경쟁력 회복"이었습니다. 같은 사건의 같은 사실에 다른 프레임이 적용됩니다. 시민이 헤드라인만 본다면 부정적 사실들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7. 갈라치기의 다섯 가지 분할선
지금까지가 거시 흐름입니다. 이제 갈라치기의 구체적 작동을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분할선이 최소 다섯 가지 있습니다.
정규직 vs 비정규직이 첫 번째입니다. 같은 노동자인데 처우가 다르고, 정규직을 "기득권"으로 프레이밍해 비정규직과 대립 구도를 만듭니다. IMF 이후 본격화된 분할입니다.
세대가 두 번째입니다. 586 vs MZ 같은 구도입니다. 같은 임금노동자인데 세대로 분할되고, 청년 일자리 부족이 586 탓으로 돌려지며, 부동산 가격이 세대 갈등으로 환원됩니다.
젠더가 세 번째입니다. 같은 취준생, 같은 청년 노동자인데 성별로 분할됩니다.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이 충돌하면서 청년 노동 시장 자체의 구조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지역이 네 번째입니다. 영남 vs 호남의 정치적 갈라치기는 한국 정치의 고전입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 정치적 정체성으로 묶여서 같은 노동자 처지가 가려집니다.
학력이 다섯 번째입니다. SKY vs 비SKY의 분할입니다. 같은 직장인인데 학력으로 정체성이 나뉘고, 출신 학교가 평생 따라다닙니다.
다섯 가지 분할이 동시에 작동하면 노동자라는 단일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갑니다. 정규직 남성 586 영남 SKY 출신과 비정규직 여성 MZ 호남 비SKY 출신은 같은 임금노동자라는 사실 외에는 어떤 정체성도 공유하지 않게 됩니다.
지배 집단은 이 분할 안에서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A 그룹과 B 그룹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동안 자본의 80년 누적 정당성과 정경유착의 구조는 의제에서 빠집니다.
8. 왜 갈라치기를 받아들이게 되는가
이게 핵심 질문입니다. "국민이 멍청해서"라는 답은 틀렸을 뿐 아니라 위험합니다. 그 답 자체가 갈라치기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이유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고, 모두 합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 정보 비용이 비대칭입니다. 구조를 이해하려면 적산 불하부터 IMF까지 80년 역사를 알아야 하고, 경제 구조를 이해해야 하며, 매체 환경을 분석해야 합니다. 수십 시간에서 수개월의 학습이 필요합니다. 보상은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반면 갈라치기 수용은 헤드라인만 읽으면 되고 5분이면 입장이 정해집니다. 시간 자원이 제한된 사람에게 구조 분석은 비효율적 투자입니다.
둘째, 즉각적 보상이 다릅니다. 구조 비판은 즉각 보상이 없고, 사회 변화는 30년 시간 스케일이며, 본인 생애 안에 결과를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갈라치기 참여는 즉시 소속감을 주고, 같은 편의 인정을 받으며, 적을 비난하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SNS 좋아요가 즉시 옵니다. 인간 본성상 즉각 보상이 장기 보상을 이깁니다.
셋째, 사회적 압력이 강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가 모두 갈라치기 프레임 안에서 대화하는데 본인 혼자 구조 비판을 시도하면 "피곤한 사람"이 됩니다. 침묵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고, 시간이 지나면 인식 자체도 다수 의견에 맞춰집니다.
넷째, 정보 환경이 비대칭입니다. 구조 비판 정보는 깊이 있는 매체에만 분산되어 있어 시간을 들여 찾아야 합니다. 갈라치기 정보는 도처에 깔려 있고 헤드라인과 SNS와 댓글에서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기본 노출 비율이 1대 100 이상입니다. 시민이 갈라치기를 흡수하는 건 환경의 결과입니다.
다섯째, 갈라치기는 부분 진실에 기반합니다. 완전 거짓이면 안 먹힙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안 챙긴다"는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일부 정규직 노조의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586이 부동산 다 가져갔다"도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세대 자산 격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조적 원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갈라치기는 부분 진실을 추출해서 전체 구조를 가리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팩트체크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섯 가지가 동시에 작동합니다. 시민이 갈라치기를 받아들이는 건 멍청해서가 아니라 합리적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걸 인정하는 게 출발점입니다.
9. 명현현상 : 후퇴처럼 보이는 시점이 변화 압력의 신호
한약을 먹었을 때 일시적으로 증상이 악화되는 현상을 명현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회복 과정의 일부고 좋아지려고 일시적으로 나빠지는 것입니다.
사회 변화에 적용하면 비슷한 패턴이 보입니다. 구조 비판 담론이 확산되면 기득권의 반격이 강해집니다. 반격이 강해지면 갈라치기가 격화됩니다. 갈라치기가 격화되면 일시적으로 후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건 변화 압력이 강해진 결과이지 변화가 안 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이재용 사례를 30년 단위로 보면 이 패턴이 명확합니다.
1996년 16억 증여세 처리 시점에는 사회적 비판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부 시민단체만 문제를 제기했고 대중적 반응은 미미했습니다.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삼성 X파일이 드러났을 때는 사회적 충격이 있었지만 처벌은 미미했습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이재용이 1차 구속됐을 때는 대중적 분노가 정권 교체로 이어졌고 재벌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7월 무죄 확정 시점에는 사법 결과는 무죄였지만 사회적 비판은 30년 중 가장 강했습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판결 비평을 냈고 다모앙 같은 커뮤니티에서도 구조 비판이 이뤄졌습니다.
같은 가문의 같은 회사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30년 동안 단조 증가했습니다. 1996년의 무비판에서 2025년의 강한 구조 비판으로 이동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무죄 확정이라는 후퇴가 있지만 거시 추세는 다른 방향입니다.
매체 환경도 변했습니다. 1995년에는 신문 4~5개의 보도가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2025년에는 다양한 시민 매체, SNS, 1인 미디어, 커뮤니티가 존재합니다. 갈라치기에 노출되는 만큼 구조 비판에도 노출됩니다.
시민단체 활동도 누적됐습니다. 참여연대가 1994년에 창립됐고 2025년 시점에 30년 활동이 누적됐습니다.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할 역량이 있습니다.
후퇴가 보이는 시기가 변화 압력이 강한 시기입니다. 완전히 안정된 기득권은 갈라치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갈라치기가 격렬해진다는 건 비대칭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10. 무엇을 봐야 하는가
여기까지의 분석에서 한 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갈라치기를 거부하려면 본질을 봐야 합니다.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섯 가지 점검 기준을 제시합니다.
첫째, "누가 이익을 보는가"를 묻습니다. 갈라치기 프레임을 만나면 그 프레임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지 자문합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안 챙긴다"는 프레임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적이 되면 노동 전체가 약해집니다. 약해진 노동의 반대편은 자본입니다. 프레임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보면 프레임의 출처가 보입니다.
둘째, "분할의 반대편에 누가 있는가"를 봅니다. A 그룹과 B 그룹의 분할이 강조될 때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정규직 vs 비정규직 구도가 강조되면 자본은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세대 갈등이 강조되면 부동산 정책 결정자는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젠더 갈등이 강조되면 노동 시장 구조는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분할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의식적으로 찾는 것이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셋째, "시간을 늘려서 봅니다." 한 시점만 보면 단기적 사실에 묶입니다. 30년 단위, 80년 단위로 보면 누적과 추세가 보입니다. 이재용 사례를 1996년부터 2025년까지 보면 자본 정당성이 80년간 누적된 자산이고 시민 비판이 30년간 누적된 자산이라는 게 보입니다. 시간 축이 본질을 드러냅니다.
넷째, "공통 이해관계로 환원합니다." 갈라치기 프레임을 만나면 의식적으로 공통 이해관계로 돌려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세대 차이" 발언을 들으면 "세대 차이가 있지만 같은 임금노동자"로 재구성합니다. "남성 vs 여성" 발언을 들으면 "같은 청년 노동자 처지"로 재구성합니다. "정규직 vs 비정규직"을 들으면 "사측의 분할 통치"로 재구성합니다. 매번 공통 이해관계로 돌리는 훈련이 갈라치기 무력화의 가장 직접적 방법입니다.
다섯째, "본인이 어떤 정보 환경에 있는지 점검합니다." 본인이 매일 보는 매체,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 가까운 사람들의 대화 안에서 갈라치기 프레임과 구조 비판의 비율이 어떤지 의식합니다. 1대 100이라면 본인이 흡수하는 정보의 99%가 갈라치기입니다. 이 비율을 의식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정보 환경 능동 구성입니다. 깊은 분석 매체에 시간을 일부 할당하고, 다양한 입장을 의도적으로 접하고, 알고리즘 추천만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점검 기준이 갈라치기를 무력화하는 도구입니다. 한 번에 다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씩 일상 안에 들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11. 노조 측이 갈 수 있는 방향
노조의 사회적 정당성 회복은 한 가지 처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작동 가능한 방향들은 있습니다.
분할의 회복이 가장 핵심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은 노조 정당성 약화의 가장 결정적 지점입니다. 산별 노조 강화, 사회적 교섭, 비정규직 직접 조직화 같은 방향이 있습니다. 회사 단위 협상을 넘어 산업별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같이 묶는 독일·북유럽 모델, 산업 전체 또는 사회적 협약 차원의 네덜란드 폴더 모델이 참고가 됩니다. 한국에서는 금속노조 정도가 산별 형태에 가깝습니다. "정규직 노조는 기득권" 프레임이 무력화되는 순간 갈라치기의 핵심 무기가 사라집니다.
정보 환경의 자기 구축이 둘째입니다. 노조 자체 매체 강화, 시민 매체와의 협력, 협상 과정 자체의 공개가 가능한 방향입니다. 현재는 사측 발표만 헤드라인이 되는 구조인데, 노조 입장과 사측 입장을 시민이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면 매체 매개의 일방성이 일부 극복됩니다.
사회적 정당성의 적극 구축이 셋째입니다. 임금 협상에만 집중하는 패턴은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인상을 만듭니다. 산업 안전, 환경, 지역 경제 같은 사회 의제에 노조가 입장을 표명하고, 시민 단체와 정기적으로 협력하며, 다른 약자 집단과 연대하는 방향이 가능합니다. 다만 정치적 진영화로 빠지면 또 다른 비판을 받게 되므로 균형이 필요합니다.
운영 투명성이 넷째입니다. 회계 투명성 확보, 민주적 의사결정, 일부 강성의 폭력 행위 자정 같은 영역입니다. 일부 사실에 기반한 비판이 갈라치기의 부분 진실 도구로 활용되는 만큼, 그 부분 진실 자체를 줄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네 가지 방향 모두 단기간에 달성될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적되면 30년 단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12. 시민 측이 갈 수 있는 방향
노조 영역과 별도로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있습니다.
정보 환경의 능동적 구성이 첫째입니다. 다양한 매체에 의도적으로 노출되고, 알고리즘 추천만 따라가지 않으며, 깊은 분석에 시간을 일부 할당하는 것입니다. 책 한 권 분량의 시간 투자가 매년 누적되면 매체 매개를 일부 우회할 수 있습니다.
메타 인지 훈련이 둘째입니다. 헤드라인을 보면 "누가 이익 보는가" 자문하고, 분노 감정이 들면 "왜 이 감정인가" 분석하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전제를 의심하고, 자기 의견의 출처를 추적하는 습관입니다. 일상 안에서 작동하는 자기 점검 시스템입니다.
작은 영역에서의 행동이 셋째입니다. 거대 구조는 한 사람이 바꿀 수 없지만 본인 영역은 가능합니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대화에서 갈라치기 프레임을 만나면 부드럽게 짚는 것, 시민 매체를 후원하는 것, 사안별로 시민단체를 부분 지원하는 것, 다모앙 같은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는 것이 모두 이 영역입니다.
갈라치기 거부의 일상화가 넷째입니다. 매번 공통 이해관계로 돌리는 훈련이 일상이 되면 본인 사고 패턴 자체가 바뀝니다. 한 번 바뀐 사고 패턴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도 영향을 줍니다.
시민 한 명의 변화는 작습니다. 그러나 100명, 1만 명, 100만 명이 누적되면 사회 변화의 한 점이 됩니다. 동시에 달성될 수 없고 한 명씩 누적되는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13. 정직한 결론
이 글이 처방의 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방향이 정답이라고 단언할 만큼 한국 사회의 비대칭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매번 새로운 갈라치기를 발명합니다. 정규직 vs 비정규직이 약해지면 세대 갈등을 강조하고, 세대가 약해지면 젠더를 강조합니다. 분할 회복은 끝없는 추격전입니다.
시민의 시간 자원은 유한합니다. 모두가 메타 인지 훈련을 할 수는 없고, 생계 우선이 합리적입니다. 100% 시민이 깨어나는 시나리오는 없습니다.
매체 환경은 자본 우위입니다. 시민 매체의 누적 속도가 느리고, 광고 시장 구조 자체가 자본에 의존합니다. 외국 모델도 신자유주의 글로벌 압력 안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시 추세는 한 방향입니다. 1996년의 시민 인식과 2025년의 시민 인식은 다릅니다. 자본 정당성의 80년 누적은 흔들리고 있고, 시민 비판 능력의 30년 누적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격차는 줄어드는 중이고, 후퇴가 보이는 시기가 압력이 강한 시기입니다.
가야 할 방향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노조의 구조 회복과 시민의 인식 변화가 같이 진행돼야 하고, 매체 환경 개선과 정보 비대칭 완화가 동반돼야 합니다. 한 영역만 바뀌어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봐야 할 본질은 명확합니다. "누가 분할하는가", "분할 너머에 누가 있는가", "시간을 늘리면 무엇이 보이는가", "공통 이해관계는 무엇인가", "본인은 어떤 정보 환경에 있는가"입니다. 다섯 가지 질문이 갈라치기를 무력화하는 도구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 글은 "국민이 변해야 한다"는 외부 명령이 아닙니다. 본인이 변하는 사례가 누적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인식의 결과입니다. 다모앙에서 글을 쓰고, 댓글에서 프레임을 짚고, 본인 영역에서 갈라치기를 거부하는 것이 100만 명 누적의 한 점입니다. 1점은 작지만 0이 아닙니다. 80년 누적된 비대칭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일이고, 30년 단위로 보면 그 균열이 모여 변화의 기반이 됩니다.
본질을 보는 것은 거대한 결단이 아닙니다. 일상의 점검입니다. 헤드라인을 만났을 때 한 박자 멈추고 **"누가 이익 보는가"**를 묻는 것, 갈등 프레임을 만났을 때 **"공통 이해관계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 작은 점검들이 80년 누적의 반대 방향 누적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