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파업, 본질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노조가 5월 21일부터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습니다. 보도를 며칠 따라가다 보면 이상한 패턴이 보입니다. 노조가 뭘 요구하는지보다 그 요구가 얼마나 "위험한지"가 먼저 나옵니다. 30조 손해, 협력사 1,750개 위기, 국가 경제 타격, 반도체 패권 상실. 헤드라인이 거의 다 이런 식입니다.
이 글은 노조 편을 들거나 사측 편을 들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노조 요구안의 적정성은 노사가 협상으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영업이익 15%가 맞는지, 12%가 맞는지, 명문화가 옳은지 그른지는 당사자들이 정할 일입니다. 제가 화가 나는 건 다른 지점입니다. 보도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것도 일관된 방향으로 말입니다.
1. 사기업 노조에 부과되는 이상한 책임
먼저 법적 사실 하나. 삼성전자 노조는 삼성전자 직원들의 노조입니다. 협력사 직원의 노조가 아닙니다. 협력사는 별도 법인이고, 별도 사용자가 있고, 별도 노사관계가 있습니다. 1,750개 협력사 직원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사용자가 있고, 그들 자신의 협상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도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삼성 노조가 파업하면 1,750개 협력사가 피해 본다."
문장 안에 숨은 전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삼성 노조는 협력사를 위해 파업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작동하려면 한 단계 더 필요합니다.
"노조는 자기 권리 행사 시 외부 영향을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좋습니다. 그 원칙을 받아들인다고 칩시다. 그럼 같은 원칙이 사측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 삼성이 협력사 단가를 후려쳐서 협력사 직원 임금이 낮은 것
- 삼성이 R&D를 줄여서 협력사가 타격받는 것
- 삼성이 해외 이전해서 협력사가 망하는 것
- 삼성 경영진 결정으로 협력사가 줄도산하는 것
이런 사안에서 사측이 협력사를 도덕적으로 책임진다는 프레임을 본 적이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같은 외부 영향 논리가 한쪽에만 적용됩니다. 사기업 노조에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면서, 같은 사기업 자본에는 그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이게 첫 번째 비대칭입니다.
2. 보도 비중의 비대칭
2025년 삼성전자 주주 배당은 11조 원이었습니다. 직원 성과금 총액은 약 6조 원이었습니다. 2026년 주주 배당은 60~70조 원으로 예상됩니다.
60~70조 원이 주주에게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헤드라인도 "그들만의 잔치"라고 쓰지 않습니다. "주주 환원 강화", "기업 가치 제고" 같은 긍정적 표현이 붙습니다. 주주 100만 명에게 60조가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작동이고, 직원 12만 명에게 45조가 가는 것은 "국민 분노"와 "그들만의 잔치"가 됩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성과급' 언급은 33,020건이었고, 부정적 단어가 긍정 단어의 약 2배였습니다. '노조' 관련 부정 언급은 72%였습니다. 여론이 노조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데이터입니다.
이걸 두고 "노조 요구가 부당해서 여론이 정확히 반응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려면 같은 회사 이익 분배인 주주 배당에 대한 보도도 같은 강도의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그게 균형입니다. 한쪽 분배는 정당하게 그리고 다른 쪽 분배는 부당하게 그리는 보도가 한 달 동안 33,020건 누적되면, 그게 여론을 만듭니다. 여론이 보도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보도가 여론을 만듭니다.
이 비대칭이 자연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게 두 번째 지점입니다.
3. 진짜 우려는 협력사가 아닙니다
전자신문 5월 12일 기사가 한 줄로 정리합니다.
"삼성전자 보상 체계는 국내 대기업 전반의 기준점 역할을 해왔다. 삼성전자가 노조 요구를 받아 제도화에 나설 경우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중소기업과 공공부문까지 동일한 요구가 확산될 수 있다."
머니투데이 5월 16일 기사는 더 직설적입니다.
"삼성전자가 선례를 만들면 우리나라 모든 기업 임직원들이 비슷한 요구를 쏟아낼 수 있어서 재계 안팎에서는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이게 진짜 우려입니다. 삼성전자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노동 협상력 균형의 변화가 사측과 재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협력사도 아니고, 국가 경제도 아니고, 반도체 패권도 아닙니다. "선례"입니다.
그런데 이 진짜 우려는 본문 깊숙한 곳에 한 줄로 들어가 있습니다. 헤드라인은 협력사 피해, 국가 경제, 셧다운 위기입니다. 본질을 부수적 사안으로, 부수적 영향을 본질로 배치하는 보도 구조입니다.
여기서 카카오 영업이익 10%, 삼성바이오로직스 20%, 현대차 순이익 30%, LG유플 영업이익 30% 같은 다른 회사 노조 요구가 이미 나오고 있다는 것도 짚어야 합니다. 삼성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한국 노동시장 전체에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가 패턴화되고 있습니다. 사측이 막으려는 건 그 패턴 전체입니다. 협력사 1,750개가 아닙니다.
진짜 이슈를 가리는 보도.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 정확히 이 지점에 해당합니다.
4. 편의점 사장과 같은 구조
이 패턴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더 작은 규모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편의점, 카페, 식당 사장들이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최저시급 올리면 우리 같은 자영업자는 망한다." "알바생 인건비 때문에 적자다." "겨우 남겨먹는데 시급 더 올리면 어떻게 운영하나."
이 말을 검증해봅시다. 자영업의 실제 비용 구조에서 가장 큰 항목은 무엇입니까.
임대료 : 보통 가장 큼, 건물주에게 흘러감
프랜차이즈 수수료 : 본사에 흘러감
재료 원가 : 공급사에 흘러감
인건비 : 알바에게 흘러감
임대료를 절반으로 깎으면 자영업 수익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임대료를 깎자는 운동은 거의 없습니다. 건물주에게 항의하는 자영업자 시위는 보기 드뭅니다. 대신 알바 시급에 압박이 집중됩니다. 가장 약한 협상력을 가진 측에 비용 압박을 전가하는 구조입니다.
삼성 사례도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주주 배당 (60~70조 예상) : 주주에게
경영진 보수 : 경영진에게
임원 스톡옵션 : 임원에게
직원 성과급 : 직원에게
↑
협상력이 약한 측에 압박 집중
주주 배당 60조에 대해서는 "기업 가치 제고"라고 쓰고, 직원 성과급 45조에 대해서는 "그들만의 잔치"라고 씁니다. 같은 회사 이익이고, 같은 분배 행위인데, 다른 표현이 붙습니다.
편의점 사장이 임대료 못 건드리니까 알바 시급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과, 재계가 자본 분배 못 건드리니까 노동 분배에 화살을 돌리는 것이 같은 구조입니다. 약한 쪽이 압박을 받는 구조입니다.
5. 무엇이 본질인가
이 사안에서 진짜 검토해야 할 질문들은 따로 있습니다.
- 삼성전자 성과급 산정 기준은 왜 불투명한가
- 사측은 과거 성과급 약속을 지켰는가 (노조는 안 지켰다고 주장)
- 노조원 9만 명이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는 게 왜 "떼쓰기"가 되는가
- 동일 회사 이익 분배에서 주주 배당과 노조 성과급에 다른 평가 기준이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한국 노동시장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 확산은 어떤 구조적 변화의 신호인가
이게 본질입니다. 보도되는 것, 즉 30조 손해, 협력사 위기, 국가 경제는 부수적 영향입니다. 본질과 부수가 뒤바뀐 보도가 한 달 동안 누적되면 여론이 형성됩니다. 형성된 여론이 다시 사측의 협상력으로 작동합니다. 여론 형성이 협상의 일부가 되는 구조입니다.
마무리
다시 말하지만 노조 요구가 100% 옳다는 글이 아닙니다. 영업이익 15%가 옳은지 13%가 옳은지는 노사가 협상으로 정할 문제이고, 그 협상에는 양쪽 다 정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건 협상 테이블에서 풀려야 합니다.
제가 화가 나는 건 그 협상 테이블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쪽에는 "법적 적법성", "헌법상 권리", "9만 명 조합원"이 있고, 다른 쪽에는 "여론", "국가 경제 프레임", "협력사 동원 논리", "긴급조정권 거론"이 있습니다. 협상력 자체가 비대칭으로 출발합니다. 그 비대칭을 만드는 데 보도가 일조합니다.
같은 사기업 이익 분배인데, 자본에게 가는 60조는 정당하고 노동에게 가는 45조는 부당하다는 프레임. 사기업 노조에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면서 같은 사기업 자본에는 묻지 않는 비대칭. 진짜 우려인 협상력 균형 변화를 부수적 우려인 협력사 피해로 포장하는 표현 전환. 약한 쪽에 비용 압박이 집중되는 익숙한 구조.
이게 본질에서 벗어난 보도입니다. 이런 보도가 한 달 동안 매일 쌓이는 동안, 노조의 실제 요구안과 그 근거, 사측의 실제 입장과 그 근거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협상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부수적으로 처리되고, 협상의 외부 영향만 헤드라인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