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누구 덕인가 - 어버이날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누구 덕인가 - 어버이날에
Photo by Suzi Kim / Unsplash

오늘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셔서, 이 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일도, 전화를 걸 일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떠나신 지 20년쯤 됐고, 어머니는 2년 됐습니다. 시간이 다른 두 자리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 자리는 이제 풍경이 된 것 같고, 어머니 자리는 아직 빈자리라는 감각이 더 생생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부모님이 두 분 다 안 계시고 나니, 한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위에 누가 없습니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된다는 게 능력이 늘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위가 비어가는 일이더라고요.

마흔 중반쯤 되니 주변에서도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부모님 한 분 보내드리고, 또 한 분 보내드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 어른은 나" 가 됩니다.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어리광 부릴 사람도 없습니다. 그건 슬픈 일이라기보다 그냥 사실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 와서야 보이는 게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결국 두 분 덕이라는 것. 이건 말로는 자주 했던 표현인데, 정작 두 분 다 떠나신 후에야 진짜 의미가 들어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의 함정

저는 인디 개발자로 살고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코드를 직접 쓰다가, 지금은 AI 에이전트들에게 일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가끔 "여기까지 내가 만들어왔다" 는 감각이 듭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본인의 시간과 시행착오 없이는 못 옵니다.

그런데 절반은 틀립니다. 그 시행착오를 견딜 수 있는 건강한 몸, 새로운 걸 배울 때 위축되지 않는 태도, 결과가 안 나와도 다음 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정서적 기반 — 이런 건 본인이 만든 게 아닙니다. 받은 겁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은 이 후자를 자주 지웁니다. 마치 모든 게 본인 노력의 결과인 것처럼. 그런데 같은 노력을 쏟아도 어떤 사람은 그게 결과로 이어지고, 어떤 사람은 안 이어집니다.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조건에서 옵니다.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 거기서 만들어진 가정의 분위기, 거기서 빚어진 나의 기본 골격.

두 분이 살아오신 방식

두 분은 비슷한 분들이셨습니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 하고, 남 돕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

그게 살면서 손해가 컸던 분들이라는 것도 압니다. 싫은 소리 못 하면 손해를 봅니다. 남 도우면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런 성품으로 산다는 건, 영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손해를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손해가 자식한테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자식은, 세상이 기본적으로 적대적이지 않다는 감각을 갖고 자랍니다. 사람을 만나면 일단 신뢰하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돕고, 손해 좀 보더라도 그게 큰일이 아니라는 태도. 이게 살아가는 데 어떤 기본기인지는, 그게 없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알게 됩니다.

어머니는 머리가 좋으셨는데 학교를 많이 못 다니셨습니다. 중졸. 그 세대 여자분들이 흔히 그랬듯이, 가정 형편 때문에 더 못 배우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똑똑함은 학력으로 증명되지 않은 채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다만 자식을 키우면서, 그 똑똑함이 다른 형태로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자식한테 무엇을 강요하지 않고,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들어주는 것 — 이게 학력 없는 사람이 본인 머리만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자세인데, 어머니는 그걸 자연스럽게 하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머니가 더 배우셨더라면 어떻게 되셨을까 가끔 상상합니다. 그건 어머니께 미안한 상상이기도 합니다. 안 배우신 게 아니라 못 배우신 거니까요. 그 시대가, 그 가정 형편이 어머니의 가능성을 닫은 거지 어머니가 닫은 게 아닙니다.

받은 것이 보이기 시작할 때

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이런 게 잘 안 보입니다. 그냥 "우리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시지" 정도. 두 분이 다 떠나신 후에야, 그 좋음이 어떻게 내 안에 쌓여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도와줄 게 있나 먼저 봅니다. 일을 할 때도, 대가를 먼저 따지기보다 "이게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일단 합니다. 손해를 본 적도 많고, 영악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그게 제 본질적인 작동 방식이라는 걸 압니다. 이건 부모님이 평생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저한테 배어든 겁니다. 의식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공기처럼 쐬고 자란 결과입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만들고 코드를 공개하고,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다듬는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 논리로만 보면 비효율적인 행동입니다. 다만 저는 "내가 쓰고 유용하니 나눠서 발전시키자" 는 감각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게 어디서 왔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두 분이 평생 살아오신 방식까지 갑니다.

부모님께 못 했던 것

이 자리에 와서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건,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아 그때 이걸 여쭤볼 걸" 싶은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시뮬레이션 일을 하던 시절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인디로 갈 때도, 일이 잘 안 풀려서 답답할 때도. 아버지라면 어떻게 보셨을까. 이제는 물어볼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는 2년 됐습니다.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안부 여쭤볼 수 있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게 후회로 남는데, 후회는 어떻게 해도 시간을 되돌리지 못합니다. 이걸 알면서도 또 비슷한 후회를 만들어가며 살아갑니다. 사람이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합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오늘 같은 날에 한 번 더 안부 여쭤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전화 한 통이라도. 그게 나중에 어떤 무게로 돌아오는지는, 두 분 다 떠나봐야만 알게 됩니다. 알게 된 시점에는 이미 늦었고요.

받은 것을 어떻게 갚는가

이게 답이 잘 안 나오는 질문입니다. 부모님은 안 계시니까요. 갚을 대상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방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분이 살아오신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싫은 소리 못 하고 남 돕기 좋아하던 분들이라면, 그 방식이 자식한테 흘러내려서 자식도 비슷하게 살면 되는 겁니다. 그게 두 분이 남기신 가장 분명한 유산이고, 제가 받은 것을 다음으로 흘려보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오픈소스 작업도 그래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제 코드를 가져다 쓰고, 또 자기 식으로 다듬고, 그게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이게 부모님이 살아오신 방식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하면 너무 갖다 붙이는 걸까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받은 것을 같은 형태로는 못 돌려드리니까, 다른 사람한테 비슷한 형태로 흘려보내는 것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같은 날에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신 채로 맞는 어버이날은, 매년 좀 묘합니다. 슬픔이라기엔 결이 다르고, 정리됐다기엔 빈자리가 여전히 빈자리입니다.

다만 이 날에 한 가지를 분명히 합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의 출발점이 두 분이라는 것. 이건 말로 표현하면 쉬운데, 진짜 의미로 받아들이려면 두 분이 다 떠나신 후의 자리에 서 봐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서 보고 나면, 어버이날은 단순히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 아니라 내 존재의 절반 이상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날에 가까워집니다.

오늘은 그래서 두 분께 마음으로만 인사 드립니다. 잘 살고 있습니다. 두 분이 살아오신 방식이 저한테 그대로 흘러와서, 저도 비슷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게 가장 좋은 인사일 것 같아요.